너의 기일에 쓰는 일기 +

안녕 아가. 언니야.

너 많이 아프다는 소리 듣고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어. 마음이 너무 아팠어. 근데 난 네가 사나흘 지나면 퇴원해서 멀쩡히는 아니더라도 차근차근 걸어 나올 줄 알았어. 네 울음 소리를 다시 한번 더 들을 수 있을 줄 알았어. 

근데 오늘 새벽에 네가 가버렸어.

넌 정신이 없어서 몰랐겠지만 너는 2022년 3월 22일 새벽 3시 15분에 우리 세상을 떠나 고양이 별로 갔어.

너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세벽 세시 그때 난 사실 아픈 네 생각을 하면 할 수록 더 힘들어져서, 나도 좀 일상을 살아보려고 넷플릭스로 드라마 보고있었어. 근데 네가 위급하다고, CPR을 하고있다는 소식을 듣고 경황도 없이 급하게 병원으로 떠났어. 유성에 있는 병원으로 가는 40분의 시간동안 기도하고 있는 손을 풀 수가 없었어. 풀지를 못했어. 이 손을 풀어버리면 진짜로 네가 가버릴 것 같아서 그냥 난 있는 힘껏 기도했어. 종교가 없는데도 그냥 신을 찾게 되더라. 40분 내내 제발 오월이가 살게 해주세요. 오월이는 살 거예요. 오월이는 살 수 있어요. 라고 일부러 확신하듯 속으로 되뇌였어.

근데 신이라는 건 없고 운명이란 건 있는 건가봐. 네가 떠났어. 

엊그제 재미로 사주 어플을 깔아서 이달의 운세를 봤어. 장례식을 많이 다닐 수 있다고, 여차 하면 상주가 될 수 있으니 조심하라더라. 난 그 문장을 보자 마자 사주를 믿지 않게 됐어. 갑자기 진짜 네가 가버릴 것 같아서 심장이 내려앉았거든. 그래서 네가 가기 전까지 절대 입 밖으로 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어. 혹여 진짜로 내뱉었다간 정말 영영 떠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운명이란 참 뭘까. 상주가 될 수 있는 걸 '조심'할 수 있는 걸까?

아무튼 너는 떠났고 우리는 남겨졌어. 의사선생님이 사망 사실을 알려주자마자 언니가 막 우는거야. 알잖아, 언니가 너 많이 사랑했던거. 우리 가족 중에 널 가장 끔찍이 아꼈던거. 그래서 너도 언니를 제일 좋아했던 거. 그래서인지, 언니의 슬픔이 가장 커서인지 난 울면 안될 것 같았어. 네가 가면 엉엉 울 줄 알았는데, 그냥 눈물 한 두 방울만 주륵 흐르는 거야. 그래서 슬퍼하면서도 이상하다 했어. 난 너무 슬펐거든. 근데 생각보다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 같지도,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지도 않았어. 그냥 네가 떠나서 너무너무 슬펐어. 너무 슬퍼서 내가 죽어버려도 아무렇지 않을 것 같았어. 그저 네가 좋은 곳에 가기를 빌었어.

언니가 너무 울길래 언니를 위로해줬어. 너도 알 지 모르겠지만, 언니는 너 아플 때 부터 엄청 울었거든. 수도꼭지 틀어놓은 것 마냥 펑펑. 언니가 이렇게 무너지는데 나라도 정신을 붙잡아야 할 것 같았어. 우리 둘다 너무 슬퍼하면 안되잖아. 그래서 언니를 위로했어. 아무렇지 않은 척 했어. 우리에게 일어난 일이 비극이 아니라고 있는 힘껏 상기시켰어. 넌 일어날 거라고 확신하면서 언니를 진정시켰어. 

결국 넌 떠나고 난 네 소식을 내 주변 극 소수에게만 알렸어. 너가 떠났을 때보다 그 아이들이 나를 위로해 줄 때 눈물이 펑펑 나더라. 지금 생각해 보면, 언니랑 있을 때는 그 슬픔이 내 것 같지 않아서 울지 못했던 것 같아. 슬픔의 당사자가 되기 싫었어. 그래서 알리는걸 꺼렸어. 알게 되면 그 슬픔은 온전히 내 것이고, 위로도 전부 나를 위한 거잖아. 그럼 정말 무너져버릴 것 같아서, 네가 죽었다는 사실을 영영 아무에게도 알리기 싫었어. 그래도 알려야 할 일은 알려야 하니까 말했어. 그리고 위로받았어. 그리고 무너졌어. 

아침까지 널 보내고 잠에 들었어. 늦은 점심에 일어났는데 주치의 선생님한테서 전화가 한 통 와있더라. 전화를 다시 걸었는데 지금까지 감사했대. 우리가 많이 힘써줘서 네가 여기까지 온 것 같대. 나도 최선을 다해 주신게 너무 감사해서 감사 인사를 드리려고 하는데 목이 메여서 제대로 하지 못했어. 네가 가기 하루 이틀 전에 상태가 호전됐다 다시 나빠졌잖아, 그때 주치의 선생님이 '면회 시간이 아니어도 되니 보호자님 아무때나 와줘서 봐주시라'고 하셨었어. 네가 우리 얼굴 보면 그래도 기운을 차린다는 명분을 들먹이시면서. 지금 생각 해보면 마지막이니까 얼굴 한 번이라도 더 보라고, 나중에 후회하지 말라고 그렇게 기회를 주신 거였어. 그 배려가 너무 고마워서, 꼭 감사 인사 드리고 싶었는데 목이 메여서 허겁지겁 끊었어. 끊고 나니까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 창틀에 얼굴을 박고 엉엉 울고 있는데 희정이가 집에 찾아와서 나를 위로해주더라. 너무 고마웠어. 그렇게 펑펑 울기 싫어서 나를 위로하는 사람이 없었음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결국은 목놓아 울어버렸어. 슬플 때는 마음껏 울어야 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데 그러기 싫었어. 내 슬픔을 직면하기 싫었어. 네 죽음을 마주하기 싫었어. 그래놓고 언니 앞에선 오늘만 울고 현실을 살아가자고 했어. 누구보다 그러지 못하고 회피하고 있는 내 모습이 버젓이 보이는데도 외면했어. 

그래도 이제는 좀 현실을 마주하려고 해. 언제까지고 네 소식에 대한 물음에 모른척 하고 있을 건 아니니까. 근데 좀 힘들다. 마음 정리를 아무리 해도 계속 무너지네. 좀 괜찮아 진 것 같아서 일기를 쓰기 시작한건데 또 이걸 쓰면서 울고있으니 참...

아가. 많이 사랑했어. 지금도 사랑하고 있어. 집에 혼자 남겨지면 너에 대한 향수가 더 짙어져. 네가 사랑하던 장소들이 계속 눈에 밟혀. 아무도 널 건드리지 못해 좋아하던 안방 옷장 체크 박스 위도, 창 밖 경치가 좋던 언니 방 책장 위도, 베란다 스크래쳐 위도, 항상 우리가 밥을 먹으면 너도 따라 먹으러 나왔던 벽난로 앞 밥그릇 자리도. 그 빈자리들이 그렇게 크게 느껴질 수가 없어. 아직도 우리는 네 통로로 방문을 조금씩 열어놓고 다녀. 네가 튀어나갈까봐 현관 중문은 항상 꼭 닫아. 안방에 들어가면 시선이 위로 올라가. 그럴 때 마다 무너져.

그래도 살아야겠지? 오늘도 난 있는 힘껏 아무렇지 않은 척 했어. 그게 편하고 좋더라. 미안하고 찌질한 일이지만 너를 그리워하고 추억하고 놓아주는 일은 이렇게 글로만 쓸게. 입으로 뱉으면 내가 너무 힘들어서 못 견디겠어. 정말 미안하고 사랑해 아가.

너에게 내가 좋아하는 시를 들려주고 싶어. 원태연의 안녕이라는 시야. 부디 고양이 별에선 행복하게 살아. 많이 먹고 실컷 자고 열심히 놀아. 나중에 만나자. 4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정말 고마웠어. 나에게 와줘서 정말 고마워. 

 

사랑해

처음부터 그랬었고

지금도 난 그래

그래서 미안하고 감사하고 그래

 

우린 아마

기억하지 않아도

늘 생각나는 사람들이 될 거야

그 때 마다 난 니가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고

내가 이렇게 웃고 있었으면 좋겠어

 

사랑하는 사람들은 왜

그렇잖아

생각하면 웃고 있거나

울게 되거나

그래서 미안하고 감사하고 그래

 

사랑해

처음부터 그랬었고

지금도 그래

 

 

하늘에서도 행복하고 사랑받길 빌게. 사랑해 나의 고양이 오월아.

 

추신.

너는 갈 때 까지도 나에게 무언가를 남겨 줬어.

나 언젠가 외국으로 떠나보려고. 막연한 의지였던 사실을 구체적인 계획으로 바꿔보려고. 언젠가 나에게 더 큰 세상을 보라고 하는 어른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글을 쓴 적이 있어. 네 장례를 하러 간 새벽에 그 말을 해주시는 어른을 만났어. 나보고 더 큰 세상을 보라더라. 될 수 있는 한 많이 쏘다니래. 내 주변에 있는 것만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래. 이 넓은 세상엔 내가 상상하지 못하는 많은 일들과 다양한 사람들이 있대. 그러니까 여러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견문을 넓히래. 막연히 하던 생각인데 누군가 그걸 말해주니까 너무 좋았어. 주변에 흐름에 휩쓸리듯 비슷비슷하게 대충 살아가려 하던 나에게 의지를 심어줬어. 큰 세계를 마주할 기회를 줬어. 마지막까지 정말 고마워.